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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드시 잡는다』 리뷰: “늙음은 끝이 아니다”

by snowseol 2025. 4. 27.

Ⅰ. 서론: 늙은 자들의 집념이 만든 작은 승리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한적한 골목에서 벌어진 연쇄 실종 사건을 소재로 삼아, 노년이라는 흔히 간과되는 시기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감독 김홍선은 이 영화를 통해 노년층을 단순한 주변 인물로 소비하는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워 무게감 있는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액션이나 과장된 서사 없이, 오로지 집념과 인간성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또한, 대도시의 무심함과 공동체 붕괴라는 묵직한 주제를 바탕에 깔고, 개인의 작지만 단단한 책임감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습니다.

II. 인물 소개: 골목 끝에 선 두 남자

심덕수(백윤식 분)는 은퇴한 전직 형사로, 현재는 오래된 골목길에 터를 잡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세월 앞에서는 몸과 마음 모두 지친 상태입니다. 그는 더 이상 정의를 외칠 나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웃 여성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다시 본능처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심덕수는 냉소적이고 퉁명스러운 겉모습 뒤에, 여전히 정의감과 책임감을 꺾지 않은 강인한 내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경찰의 현직 권한은 잃었지만, 오랜 형사로서 길러온 날카로운 직관과 치밀한 집념을 무기로 삼아 사건의 진실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갑니다.
박평달(성동일 분)은 심덕수의 오랜 이웃이자 친구입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매사에 느긋하고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심덕수가 위험에 빠졌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는 의리를 가진 인물입니다. 평달은 덕수와는 달리 수사에 대한 전문성은 없지만, 생활인 특유의 촉과 끈기로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의 소탈한 인간성은 영화 전반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며, 덕수와의 끈끈한 우정은 이 작품이 단순한 범죄 스릴러에 머물지 않고 인간 드라마로 확장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축이 됩니다.
범인(이철민 분)은 영화 내내 그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채 등장하는 존재입니다. 그는 특별한 이유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방치와 무관심 속에서 괴물로 성장한 인물입니다.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은 교묘하고 은밀하며, 주변 사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합니다. 영화는 범인을 단순한 악마로 묘사하는 대신, 사회 전체의 무관심과 단절이 낳은 비극적 산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Ⅲ. 줄거리: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골목에서 벌어진 사건

영화는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이웃 주민이었던 한 여성이 밤중에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단순 실종으로 치부되며, 주변 사람들도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경찰은 사건을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곧 관심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심덕수는 불길한 예감을 느낍니다. 그는 현장을 세밀하게 살피고, 작은 단서들을 모아 나가며, 이 사건이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덕수는 평달과 함께 골목 주민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탐문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웃들은 ‘괜히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서로를 경계합니다. 무관심과 냉담함이 골목 전체를 짙게 드리웁니다. 이 와중에 덕수는 또 다른 실종 사건이 있었음을 알아내고, 이 사건들과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실종자들은 모두 비슷한 시간대, 비슷한 장소에서 사라졌으며, 범인의 범행 수법이 일정하다는 점에서 연쇄 사건임을 직감합니다.
덕수는 경찰에 다시 수사의 필요성을 호소하지만, 경찰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덮으려 합니다. 이에 분노한 덕수는 결국 직접 범인을 추적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사건 당일 주변 CCTV 영상을 일일이 확인하고, 주민들의 행동 패턴을 기록하며 점차 범인의 윤곽을 좁혀갑니다. 한편 평달은 덕수의 뒤를 묵묵히 지키며 물심양면으로 돕습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덕수는 골목 곳곳에 쌓인 이웃 간의 불신, 방치된 삶의 흔적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한 끝에 생겨난 커다란 구멍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결국 덕수는 범인과 마주하게 됩니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범인을 제압한 그는, 범인의 집에서 또 다른 실종자들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경찰은 뒤늦게 출동하여 사건을 정리하고, 덕수는 다친 몸을 이끌고 평달과 함께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나옵니다. 영화는, 골목을 지나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한 이웃들의 모습을 비추며, 무너졌던 공동체가 조금씩 회복되는 가능성을 조심스레 암시하며 끝맺습니다.

Ⅳ. 주제 분석: 외면은 또 다른 범죄이다

『반드시 잡는다』는 단순히 범죄를 해결하는 서사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관심’과 ‘책임’의 무게입니다. 영화는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가장 끔찍한 범죄는, 어떤 한 악인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아니라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발생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웃을 외면하는 일상적 무관심, 편의를 위해 정의를 미루는 타협, 그리고 방관이 결국 가장 큰 참사를 만든다는 점을 영화는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또한 늙고 지친 인물들이 여전히 세상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나이 든 존재를 주변부로 몰아세우는 사회적 편견에도 정면으로 맞섭니다. 심덕수와 박평달은, 힘이 남아 있기에가 아니라, 단지 ‘옳기 때문에’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Ⅴ. 연출 및 미장센: 덤덤함 속에서 끓어오르는 긴장감

김홍선 감독은 화려한 기교를 배제하고, 고요하지만 끈질긴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촬영은 주로 좁고 어두운 골목을 따라가며, 관객이 직접 그 안을 걸어 다니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조명은 절제되어 있으며, 쓸쓸하고 스산한 톤을 유지해 인물들의 외로움과 절박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음악 역시 최소화되어, 긴장감이 필요한 순간에도 침묵이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냅니다. 클라이맥스인 범인 체포 장면에서도 빠른 편집이나 과장된 액션 대신, 느린 호흡과 인물의 표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관객이 스스로 숨을 죽이며 긴장하게 만듭니다.

Ⅵ. 배우들의 열연: 무게를 지탱하는 힘

백윤식 배우는 심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한 인간이 책임을 짊어지고 어떻게 끝까지 걸어 나가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의 주름진 얼굴과 건조한 목소리는 오랜 세월을 통과한 인간만이 낼 수 있는 깊이를 담아냅니다. 성동일 배우는 특유의 능청스러움 속에 진한 인간미를 녹여 박평달을 생생하게 구현합니다. 두 배우의 호흡은 자연스럽고 유려하며, 영화 전체의 무게를 탄탄하게 지탱합니다.

Ⅶ. 결론: 잡아야 했다, 그래서 잡았다

『반드시 잡는다』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닙니다. 이는 단지 한 골목의 작은 비극을, 단 두 명의 노인이 목숨 걸고 막아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이야기가 전하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옆 사람의 비명에 귀 기울이는 바로 그 작은 책임이 세상을 지키는 힘임을 이 영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명해 보입니다. 『반드시 잡는다』는,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