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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복수는 나의 것』 리뷰: "절망 속에서 복수"

by snowseol 2025. 5. 1.

 

Ⅰ. 서론: 복수의 굴레에 갇힌 인간들의 슬픈 초상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당시 한국 영화계에 매우 낯설고 도발적인 충격을 안긴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복수를 둘러싼 인간 군상의 무력감과 슬픔을 건조하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 정의와 죄책감의 경계는 무너지고, 남는 것은 오직 처절한 고통과 무의미한 파멸뿐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차갑고도 슬픈 사회적 알레고리이며, 인간 본성에 대한 거칠고 날카로운 성찰이기도 합니다.

 


Ⅱ. 인물 소개: 절망 속에서 복수를 꿈꾸는 이들

 


류(신하균 분)는 청각장애를 지닌 청년으로, 공장에서 해고된 뒤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누나를 살리기 위해 절박한 선택을 합니다. 누나의 신장 이식을 위해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 밀매 사기단에 속아 장기를 빼앗기고, 결국 어린 소녀를 유괴하는 범죄에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류는 악의로 가득 찬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에 의해 짓눌린 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한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조용한 절망과 애처로운 몸짓은 영화 전반에 걸쳐 묵직한 슬픔을 드리웁니다.
영미(배두나 분)는 류의 연인이자, 급진적 사회운동가입니다. 그녀는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증오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상은 현실의 절박함 앞에서 종종 왜곡되거나 무력해집니다. 영미는 류와 함께 유괴를 계획하고 실행하지만, 이 선택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 온전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냉철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결국 세상의 폭력성과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박동진(송강호 분)은 유괴당한 소녀 유선의 아버지로, 중소기업의 대표입니다. 그는 외부적으로는 성공한 중산층처럼 보이지만, 딸을 잃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혀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동진은 딸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슬픔을 이성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복수의 굴레에 발을 들입니다. 그의 복수는 정의나 법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 고통의 분출로 진행됩니다. 동진은 선한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점차 가혹한 가해자가 되어가며, 영화는 이 과정을 냉혹하게 따라갑니다.

 


Ⅲ. 줄거리: 복수가 낳은 또 다른 복수의 서사

 


영화는 류가 공장에서 해고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청각장애를 지닌 그는 세상과의 소통조차 힘겹게 이어가고 있으며, 아픈 누나를 위한 병원비조차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류는 불법 장기밀매를 통해 돈을 마련하려 하지만, 사기단에게 신장만 빼앗기고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궁지에 몰린 류는 영미와 함께 마지막 수단으로 유괴를 결심합니다. 그들은 류가 과거에 일했던 회사의 대표 박동진의 딸 유선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합니다.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되었고, 아이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류는 유선을 조심스럽게 돌보며, 돈만 받으면 무사히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선은 강가에서 사고로 익사하고 맙니다. 아이를 해칠 생각은 없었던 류와 영미는 절망에 빠지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고 맙니다.
박동진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스스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점점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류와 영미를 찾아내고, 끔찍한 복수를 실행합니다. 동진은 류를 납치해 잔혹하게 고문하고, 그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마저 무너뜨립니다.
류는 죽음을 맞지만,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미는 동진에게 복수를 시도하고, 또 다른 사슬이 이어집니다. 영화는 이 복수의 연쇄가 어떤 구원도 낳지 못한 채, 오직 더 큰 비극만을 양산한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Ⅳ. 주제 분석: 복수의 순환과 인간성의 붕괴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를 단순한 정의의 수단이나 감정적 해방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수는 인간의 무력감과 분노, 상실이 만들어낸 또 다른 파괴의 기제임을 보여줍니다. 복수는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고통을 재생산하고 증폭시킬 뿐입니다.
영화는 또한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사회 구조적 모순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치밀하게 짚습니다. 류는 단순히 개인적 실패로 몰락한 것이 아니라, 장애인으로서, 노동자로서, 사회적 약자로서 끊임없이 착취당하고 버려진 존재입니다. 그의 절망적 선택은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이처럼 한 인간의 몰락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조리와 긴밀히 얽혀 있음을, 거칠고도 치밀하게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부조리 속에서 복수는 구원이 아니라 더 깊은 절망만을 남긴다는 냉혹한 진실을 관객 앞에 내놓습니다.

 


Ⅴ. 연출 및 미장센: 차가운 화면에 담긴 뜨거운 고통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극단적으로 건조하고 절제된 미장센을 구사합니다. 과장된 감정 연기나 음악은 거의 배제되며, 카메라는 무심한 듯 인물들의 파멸을 관찰합니다.
색채는 전체적으로 흐릿하고 탁하며, 서울 변두리의 스산한 풍경과 폐쇄된 실내 공간들은 인물들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심리를 압도적으로 반영합니다. 고문과 살인의 장면은 잔인하지만, 결코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폭력의 본질적 무의미함을 더욱 선명히 부각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절제된 연출은 감정의 과잉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더 깊은 비극성과 인간적 연민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Ⅵ. 배우들의 열연: 인간의 슬픔과 광기를 체현하다

 


신하균은 류라는 인물의 절망과 분노를 과장 없이 섬세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거의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눈빛과 몸짓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배두나는 영미의 급진성과 연약함을 복합적으로 그려내며, 단순한 조연이 아닌 또 하나의 비극적 주체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송강호는 복수심에 눈이 먼 박동진을 연기하며, 상실과 분노, 그리고 파멸로 치닫는 인간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그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영화의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Ⅶ. 결론: 복수의 끝에는 무엇이 남는가

 


『복수는 나의 것』은 결코 관객에게 위안을 주지 않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복수라는 행위가 가져오는 무서운 악순환을 집요하게 보여주며, 그 끝에는 승자도 패자도, 정의도 구원도 없다는 잔혹한 진실을 남깁니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인간이 상처받고 상처를 되갚는 과정을 통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모습을, 담담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비추어 냈습니다.
이 영화는 묻습니다. 우리는 복수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복수의 끝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박찬욱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복수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는 인간 존재의 슬픔과 무력함을 뼛속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질문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