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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 리뷰: “정의는 협상의 대상이 되는가”

by snowseol 2025. 4. 28.

Ⅰ. 서론: 정의를 가장한 협잡의 세계

 


『부당거래』는 대한민국 사회의 치부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범죄 드라마입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거칠고 리드미컬한 연출과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단순한 범죄 수사극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체를 향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의, 공권력, 언론, 그리고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부패와 타협의 연속은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권선징악이라는 전통적 구도를 거부하며, 누가 옳고 그른지조차 흐릿한 회색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부당거래』는 정의가 아닌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인간 군상을 통해, 부패한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지를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Ⅱ. 인물 소개: 타협과 생존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최철기(황정민 분)는 강력반 소속 형사로, 실적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서슴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는 폭력과 조작을 동원해 범죄를 해결하고, 상부의 신임을 얻어 승진을 꿈꿉니다. 최철기는 천성이 악랄하다기보다, 부조리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낸 인간입니다. 그의 눈빛은 타협과 체념이 만든 비굴함과 동시에, 끝내 무너지지 않는 어떤 오기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관객이 미워할 수만은 없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주양(류승범 분)은 엘리트 출신의 젊은 검찰 검사입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깨끗하고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야망에 눈이 먼 권력 지향적 인물입니다. 주양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필요하다면 진실을 왜곡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는 도덕성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신, 철저히 현실에 순응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갑니다. 주양은 기존 체제의 부패를 이용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냉혹한 신인류를 대표합니다.
장석구(유해진 분)는 폭력조직 출신 브로커로, 경찰과 범죄자, 정치인 사이를 오가며 온갖 뒷거래를 중개하는 인물입니다.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행동하지만, 그 속에는 상황을 꿰뚫어 보는 냉철함과 생존 본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석구는 시스템 밖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스템을 지탱하는 어두운 축이며, 필요할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살아남는 자의 표본입니다.

 


Ⅲ. 줄거리: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결의 타이밍

 


영화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됩니다. 피해자가 모두 어린 여학생이라는 점, 잔혹한 수법으로 인해 사회적 공분이 극에 달하고, 경찰은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라는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됩니다.
최철기는 실적을 올리고 부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진범이 아닌 다른 범인을 조작해 사건을 해결하려 합니다. 그는 장석구를 통해 범인 역할을 맡을 인물을 만들어내고, 조작된 증거와 허위 자백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이 조작 사건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검찰은 경찰 조직의 부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주양 검사는 최철기의 조작 사건을 꼬투리 삼아 경찰을 압박합니다. 주양은 외형상 정의를 위한 수사를 벌이는 듯 보이지만, 그 속내는 권력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최철기와 주양은 서로를 이용하고 견제하며 팽팽한 대립을 이어갑니다. 주양은 최철기를 옭아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압박하지만, 최철기 역시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는 또 다른 조작과 협잡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려 합니다.
한편, 사건의 진실은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묻히고, 범인을 잡는 일은 더 이상 아무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승리할 것인가,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뿐입니다. 결국, 최철기는 자신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몰락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몰락은 새로운 부조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됩니다. 주양은 최철기를 희생양 삼아 승승장구하고, 장석구는 여전히 시스템 틈바구니를 누비며 살아남습니다. 영화는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정의롭지 않고, 누군가의 희생 위에 또 다른 부당한 승리가 쌓이는 구조를 차갑게 보여줍니다.

 


Ⅳ. 주제 분석: 시스템 안에서 정의는 사라진다

 


『부당거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정의란 고결한 신념이나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철저히 희생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행동합니다. 최철기는 생존과 승진을 위해, 주양은 출세를 위해, 장석구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부당거래에 가담합니다. 그 누구도 본질적으로는 절대악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부패에 가담하고 맙니다.
영화는 한 개인의 타락이 아닌, 시스템 자체가 부패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선악의 이분법을 거부한 채, 모두가 어딘가에서는 피해자이면서 다른 곳에서는 가해자가 되는 복잡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부당거래』는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냉정하게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Ⅴ. 연출 및 미장센: 무거운 진실을 끌어올리는 리듬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를 통해 액션이 아니라 '대사'와 '심리'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연출을 선보입니다. 빠른 템포와 날카로운 대사, 촘촘한 플롯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며, 관객을 긴박한 음모와 거래의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어두운 조명과 회색조 톤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인물들의 감정선에 깊이를 부여합니다. 도시의 음습한 골목, 경찰서의 칙칙한 사무실, 고급 레스토랑의 화려한 외피 등 공간의 대비는 부조리한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음악은 과하지 않게, 그러나 순간순간 정확히 타격하며 영화의 리듬을 조율합니다.

 


Ⅵ. 배우들의 열연: 진짜 인간을 만들어낸 힘

 


황정민은 최철기라는 인물을 단순한 부패 경찰이 아닌, 생존과 갈등의 복합적 인물로 입체감 있게 구현해냈습니다. 그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는 최철기의 내면에 깃든 분노와 체념,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오기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류승범은 주양 역할로, 젊고 냉혹한 엘리트의 이중적 얼굴을 완벽히 표현하며, 날카로운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유해진은 장석구 캐릭터를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게 연기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부여해 작품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이 세 배우의 강렬한 앙상블은 『부당거래』를 단순한 범죄극이 아닌, 인간 드라마로 승화시켰습니다.

 


Ⅶ. 결론: 우리는 부당거래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부당거래』는 단순히 부패한 경찰과 검찰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타협과 협잡으로 움직이는 구조임을 드러냅니다. 정의는 구호가 아닌 거래의 수단이 되고, 진실은 필요할 때만 소환되며, 승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부당거래』는 이 씁쓸한 진실을 냉혹하게 꺼내어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세계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영화는 긴 시간 동안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그리고 깊게 흔들어놓습니다.